글
6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용양봉저정과 여의도 비행장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용양봉저정과 여의도 비행장 열번째이야기_용과 봉황이 머문 용양봉저정과 공원이 된 여의도비행장_9호선 마지막 9호선 이야기는 개혁군주 정조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용양봉저정으로 가보겠습니다. 9호선 노들역 3번 출구로 나와 200m 정도 걸어가다 보면 오래된 석축 기단위에 자리 잡은 용양봉저정이 있습니다. 용이 뛰놀고 봉황이 높이 나는 정자라는 의미의 용양봉저정은 바로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홍씨와 화성 행차시 잠시 머물며 점심을 했던 곳입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역사이지만, 정조는 1789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후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화성을 방문했죠. 그러다가 1795년 즉위 20주년이자 혜경궁 홍씨와 죽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아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잔치를 화성에서 열기로 합니다. 『화성능행도』8폭 中 ‘노량주교도섭도’에는 행차 마지막 날인 1795년 윤2월 6일 용양봉저정에서 출발하여 배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가장 성대하고 화려했던 을묘년 화성행차 이 행차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한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예전 연산군은 사냥을 가기 위해 배다리를 만들면서 백성들의 배를 800척이나 동원하여 원성이 높았었죠. 정조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1789년에 주교사라는 배다리 관리관청을 설치하였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정약용으로 하여금 새로운 배다리의 설계를 지시했습니다. 노량주교도섭도에 그려진 용양봉저정과 그 아래 주교사 부분 『원행을묘정리의궤』中 주교도 튼튼하고 웅장하게 만들어진 배다리는 한강을 가로질러 노량행궁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동원된 배는 단 36척이었습니다. 정조는 배주인들에게 세곡운반 등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정조는 용양봉저정에 먼저 들어가 어머니가 머물 방의 온돌을 살핀 후 혜경궁을 모셨답니다. 그리고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시흥행궁을 향해 출발합니다. 돌아오는 길인 2월 16일 다시 용왕봉저정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배다리를 건너 환궁하
옛날사진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사진 있길래 옛날사진 몇장 올립니다. 스캇 MTB 타고 다닐때입니다. 2000년대 초반 미사리 시간과 정신의 방쪽 길입니다. 그때도 자전거 도로는 시멘트 길이었네요 지금보니 그때도 클릿 사용했네요 팔당갈때 입니다. 강동대교? 인지, 팔당대교인지, 그럴겁니다 자전거 도로가 없이 저런길을 달렸습니다. 그때는 아이유고개가 없고 팔당으로 가려면 많은 분들이 천호대교 지나서 쭉가다가, 자전거길이 끊기면 펜스 넘어 자전거 들고 약 400M?? 정도 올림픽대로 있는곳 역주행으로 거꾸로 올라가서고덕생태공원 (현재 고덕보전지역)으로 들어갔었죠. 2004년도 잠수교입니다. 지금 처럼 자전거 도로가 없네요. 2003~4년 정도?? 중랑천 합수부 가기전입니다. 지금은 공사하는 그곳입니다. 벤치도 없고 바닥보시면 그냥 시멘트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