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22의 게시물 표시

본인 반응 속도 테스트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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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화면에서 기다렸다가 초록색 화면으로 바뀌는 순간 클릭!! 클릭하면 본인 반응속도 결과 나옴! ​ ​ 평균 273ms 이라네요 ​ 201ms 나왔습니다. 아래 주소 클릭 ​ https://humanbenchmark.com/tests/reactiontime ​ https://humanbenchmark.com/tests/reactiontime   Human Benchmark - Reaction Time Test humanbenchmark.com ​

지금 나오면 학계 퇴출될만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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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나오면 학계 퇴출될만한 실험 ​ ​ 어린 앨버트 실험 생후 9개월 영아를 대상으로 고전적 조건 학습을 실험하는 연구를 진행 실험 주도자 왓슨은 공포는 학습되어진다라는 가정을 중심으로 실험 개시 ​ ​ ​ 각종 동물(토끼, 쥐, 그냥 가면, 개)을 아이와 대면 시킴 왓슨은 공포가 학습되지 않아서 동물들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음 <중립자극> ​ ​ ​ ​ 이후 앨버트에게 공포를 학습시키기 위해 동물과 함께 있을때마다 망치와 강철봉으로...... 그냥 큰소리를 일으켜 놀라게 만듬 <무조건적 자극> ​ ​ ​ 공포가 학습되어 전에는 잘 만졌던 동물들을 보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리며 무서워함 <조건화된 반응> 이후 왓슨은 이런 공포(조건화된 반응)이 다른 대상에게 전이되는지 확인하려고 쥐, 고양이, 가면, 개, 모피코트, 머리카락 등 거의 모든 사물과 대상을 가지고 실험했고 ​ ​ 실험 말기에 이르러 앨버트는 모든 대상에게 공포를 느끼게 됨... 그럼 왓슨은? 《심리학 논평(Psychological Bulletin)》과 《심리학 리뷰(Psychological Review)》의 편집장이자 대학의 교수직을 제안받고 이 실험을 바탕으로 낸 논문으로 행동주의의 아버지로 존경받음

조선인을 변호한 일본 면호사, 후세 다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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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을 변호한 일본 변호사, 후세 다쓰지 후세 다쓰지 布施辰治 (1879~1953) 일본 미야기현의 이시노마키 시에서 출생했다. 메이지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우쓰노미야 지검 검사로 부임했다. 하지만 검사로 활동하던 중 생활고로 동반자살을 시도하다 아들만 죽고 어머니는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 났는데, 그녀를 살인미수로 기소하는 법률의 미비점과 적용에 대한 문제점에 회의를 느끼고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되었다. 1911년에 그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병합이 제국주의적 침략임을 규정하고 한국의 독립 운동을 지지하였다. 이후 그는 주로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다. 1919년에는 2.8 독립선언의 주체였던 최팔용, 송계백 등을 변호하여 내란죄 혐의에 대한 무죄를 주장하였으며 1924년에는 도쿄 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인 김지섭의 변호를 맡았다. 한편 1923년에 발생했던 관동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 해당 사건이 일본 정부와 일본 경찰, 군부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로 인한 사건임을 강력하게 비판하였고 조선일보에 이를 사죄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변호 행적 중 가장 유명한 예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호이다. 두 사람은 덴노를 폭살할 계획을 세우다가 검거되어서 덴노 폭살을 기획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 재판은 '박열 대역 사건'으로 불리며 일본 전역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후세 다쓰지는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옥중 결혼 수속을 대신 해 주었다. 또한 후미코가 자살하자 그녀의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 매장을 해 줄 정도로 노력하였다. 이후 1932년 공산당 세력에 대한 탄압이 거세던 도중에 법정에서 공산당 탄압을 강력하게 비판했다가 법정 모독이라는 근거로 징계를 받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고, 이후에도 두번이나 더 회복과 박탈을 반복하였으며 신문지법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두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