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풍속도첩<25폭>(檀園風俗圖帖<二十五幅>)
1. 무동
2.씨름
3.길쌈
4.편자박기
5.주막
6.기와이기
7.고기잡이
8. 점심
9. 우물가
10. 활쏘기
11. 자리짜기
12. 서당
13. 점괘
14. 행상
15. 빨래터
16. 고누놀이
17. 벼타작
18. 논갈이
19. 그림감상
20. 담배썰기
21.나룻배
22. 장터길
23. 대장간
24, 산행
25. 노상과안
<기본 설명>
조선 후기의 화가인 김홍도가 그린 그림책 형태의 풍속화 25첩이다. 단원 김홍도(1745∼?)는 신선그림이나 초상화, 산수화 등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그렸지만, 풍속화가로 더 유명하다.
풍속화는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을 하여 그렸는데, 각 장의 크기는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이다. <씨름>, <대장간>, <글방> 등과 같이 서민사회의 일상생활 모습과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구수하고도 익살스럽게 표현된 그림들이 실려 있다.
풍속화의 대부분은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는데, 특히 인물은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익살스러움을 한층 더하였다. 선이 굵고 힘찬 붓질과 짜임새있는 구도는 화면에 생동감이 넘치게 하는 한편 서민들의 생활감정과 한국적인 웃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조 21년(1745)∼순조 16년(1816)에 그린 이 풍속화들은 활기차게 돌아가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사실성과 사회성을 그 생명으로 삼았고, 또한 서민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문 설명>
소폭의 풍속화로 엮은 지본설채(紙本設彩)의 화첩으로서, 현존하는 단원의 순민속(純民俗) 내용의 다폭첩(多幅帖)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여항(閭巷)의 세시기나 다름이 없는 시정 서민의 일상사를 주제로 한 것이어서 잃어진 사회의 면면을 조명해 보는 기록적 자료도 된다.
단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그의 화필은 미치지 않은 방면이 없다시피 다양한 주제를 수적(手蹟)으로 남겼다. 도첩이 그의 다른 화경(畵境)인 인물 ·신선이나 사경(寫景)과는 표현감각이 다르면서도 주목되는 것은 그 깊은 화안(畵眼)과 기량의 해조(諧調)였다고 할 것이다.
도첩 전반에서 신운 ·아취가 아닌 활기있게 돌아가는 시정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고, 따라서 직접적인 사실성과 사회성을 생명으로 삼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치에 있어 비수(肥瘦) ·지속(遲速)이 자재로운 주관적 신선 ·인물이나 산수풍의 선이 극히 드물고, 그것을 도리어 배제하여 적확한 객관적 묘사 위주로 분위기를 통일한 것은, 그러한 시정 단면의 기록성을 목적으로 의식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원 독자의 예술적 세계 안에서 형성된 단원적 기법인 것이다.
이러한 선의 표현에 있어서나 배치 ·구성의 다양성에서 그 내용과의 힘있는 결합은 무락도(舞樂圖)나 각저도(角抵圖)에서처럼 강건한 시대적 기백의 표현이며, 한편으로는 밝은 해학이 넘치게 한다.
여속(女俗)을 추구한 혜원과 쌍벽을 이룬 단원이 긍재(兢齋)나 임당(琳塘) 등 주변에 영향을 끼쳐, 시민사회의 여명 ·자각이라는 사회성을 내실(內實)로 한 풍속화의 조류를 형성케 한 단적인 수적(手蹟)의 일례로서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단원풍속도첩<25폭>(檀園風俗圖帖<二十五幅>)
1. 무동
2.씨름
3.길쌈
4.편자박기
5.주막
6.기와이기
7.고기잡이
8. 점심
9. 우물가
10. 활쏘기
11. 자리짜기
12. 서당
13. 점괘
14. 행상
15. 빨래터
16. 고누놀이
17. 벼타작
18. 논갈이
19. 그림감상
20. 담배썰기
21.나룻배
22. 장터길
23. 대장간
24, 산행
25. 노상과안
<기본 설명>
조선 후기의 화가인 김홍도가 그린 그림책 형태의 풍속화 25첩이다. 단원 김홍도(1745∼?)는 신선그림이나 초상화, 산수화 등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그렸지만, 풍속화가로 더 유명하다.
풍속화는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을 하여 그렸는데, 각 장의 크기는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이다. <씨름>, <대장간>, <글방> 등과 같이 서민사회의 일상생활 모습과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구수하고도 익살스럽게 표현된 그림들이 실려 있다.
풍속화의 대부분은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는데, 특히 인물은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익살스러움을 한층 더하였다. 선이 굵고 힘찬 붓질과 짜임새있는 구도는 화면에 생동감이 넘치게 하는 한편 서민들의 생활감정과 한국적인 웃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조 21년(1745)∼순조 16년(1816)에 그린 이 풍속화들은 활기차게 돌아가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사실성과 사회성을 그 생명으로 삼았고, 또한 서민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문 설명>
소폭의 풍속화로 엮은 지본설채(紙本設彩)의 화첩으로서, 현존하는 단원의 순민속(純民俗) 내용의 다폭첩(多幅帖)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여항(閭巷)의 세시기나 다름이 없는 시정 서민의 일상사를 주제로 한 것이어서 잃어진 사회의 면면을 조명해 보는 기록적 자료도 된다.
단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그의 화필은 미치지 않은 방면이 없다시피 다양한 주제를 수적(手蹟)으로 남겼다. 도첩이 그의 다른 화경(畵境)인 인물 ·신선이나 사경(寫景)과는 표현감각이 다르면서도 주목되는 것은 그 깊은 화안(畵眼)과 기량의 해조(諧調)였다고 할 것이다.
도첩 전반에서 신운 ·아취가 아닌 활기있게 돌아가는 시정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고, 따라서 직접적인 사실성과 사회성을 생명으로 삼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치에 있어 비수(肥瘦) ·지속(遲速)이 자재로운 주관적 신선 ·인물이나 산수풍의 선이 극히 드물고, 그것을 도리어 배제하여 적확한 객관적 묘사 위주로 분위기를 통일한 것은, 그러한 시정 단면의 기록성을 목적으로 의식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원 독자의 예술적 세계 안에서 형성된 단원적 기법인 것이다.
이러한 선의 표현에 있어서나 배치 ·구성의 다양성에서 그 내용과의 힘있는 결합은 무락도(舞樂圖)나 각저도(角抵圖)에서처럼 강건한 시대적 기백의 표현이며, 한편으로는 밝은 해학이 넘치게 한다.
여속(女俗)을 추구한 혜원과 쌍벽을 이룬 단원이 긍재(兢齋)나 임당(琳塘) 등 주변에 영향을 끼쳐, 시민사회의 여명 ·자각이라는 사회성을 내실(內實)로 한 풍속화의 조류를 형성케 한 단적인 수적(手蹟)의 일례로서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