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은 소부대 작전과 고립된 표적에 대한 호전적인 공세적 습격, 공세적 매복, 특히 야간매복을 매우 선호했다. 무술을 사용 가능해서인지 백병전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는 사실이었다.
베트콩이 안전하게 숨겨놓았다고 생각한 무기들을 찾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한국군이 동맹군이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한국군의 담당 지역 안정화 작업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한국군은 작전 담당 지역에서의 소규모 대민지원 및 보안 작전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다만 한국군의 성과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이는 한국군의 내부조율 및 외부협력이 부족했던 점과, 현지인들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제임스 맥이 그렇게 폄하하는 해병대가 바로 1:24 사상자 비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Van Buren 작전중 한국군 소대들 중 약 하나인 약 13명의 한국 해병들로 구성된 소대가 정예 월맹군 연대를 섬멸했다. 해병들은 2명을 잃었지만 400명 이상의 월맹군 사상자가 났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1:24 사상자 비율을 자랑했다.
옛날 사진 몇장
1900년대 각국공원(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월미도 1904년 서울 1890년대 도로포장 이후 무악재 1936년 북청사자 놀이패 1924년 서울역을 짓고있는 모습 영국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가 찍은 1897년 서울 경희궁과 경운궁을 잇는 홍교.(1902년) 빨래하는 여성들 (1951년 제주도) 1953년 경성우체국이 보이는 서울거리 1953년 한강 철교 1958년 서울 응암동 움막집 전경 1953년 시경 옥상에서 내려다본 태평로일대 1950년대 동대문 운동장 50년대 세종로 더위속에서 냉차를 파는 여인이 아이를 등에 업은채 손님들을 찾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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